어릴 때 꼭 필요한 숲교육
요즈음 아이들 기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지요? 이런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심신이 건강한 아이를 기르고 쉽다면 당장 가까운 숲을 찾아보세요.
오랫동안 월간 산잡지 '마운틴'기자로 일했던 김선미 엄마 작가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자녀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봅니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산'은 꼭 필요한 존재다. 산에서 뛰어놀 때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건강해지고, 산을 오르내릴 때 따뜻한 유년의 추억이 가슴 깊이 남는다. 아이에게 산이 주는 의미는 무얼까. 희망과 대안을 주는 '산 이야기'.
숲에 가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게 제일 좋습니다.나무가 모여 숲이 되지만 나무만 모여 있다고 온전한 숲이 될 수 없습니다. 풀과 떨기나무와 큰 키 나무들이 어우러져야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식구들도 풍성해지니까요. 자벌레부터 다람쥐와 산새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뭇 생명들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 아이의 느린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허리를 굽혀 눈높이도 낮춰보아야만 숲의 그런 모습이 더 잘 보입니다. 아이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도 숲과 자연에 연결되어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느끼는 것. 그래서 외롭지 않다는 것…. 숲에서 부모는 그런 마음으로 느긋해지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는 숲에 가면,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저절로 느끼고 배우니까요. 멀리 있는 큰 산이나 유명한 관광지보다 가까이 있는 동네의 작은 숲부터 자주 찾아보길 바랍니다. 할 수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찾아갈 수 있는 곳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몸과 마음으로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집 가까운 곳에 내 아이를 위한 유년의 뒷동산을 찾아주세요. 숲에서 놀던 아이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드디어 모험이 시작됩니다. 모험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 김선미
◇아이와 산을 오르고, 여행을 가고, 자연을 누리는 엄마 작가, 김선미
오랜 기간 산악 잡지 <mountain>에 기자로 있었다. 엄마가 된 뒤 본격적으로 등산에 매력을 느껴 등산학교에 들어가 높고 깊은 산의 세계에 눈을 떴다. 자연을 벗삼아 살고 싶다는 생각에 두 아이가 다섯 살, 세 살 되던 해 시골로 삶터를 옮겨 10여의 년 긴 시골 생활을 누리며 아이들에게 '유년의 뒷동산'을 선물했다. 2006년 초등생이던 딸들과 마라도까지 국토 종단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담은 첫 책 <아이들은 길 위에서 자란다>를 썼으며, 지금까지 <산에 올라 세상을 읽다>,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열두 달 야영일기>, <산악문화도시> 등의 책을 펴냈다. 최근작 산이 아이들에게 주는 희망과 대안을 이야기한 책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김선미 작가가 들려준 '산 이야기'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산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어느 마을에나 크고 작은 뒷동산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면 어디든 병풍이나 울타리처럼 마을을 감싸는 산이 있었고, 대부분 그런 산줄기들을 보면서 자랐지요. 몇몇 용감한 아이들은 동무들과 뛰놀던 좁은 골목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산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상의 작은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때로는 부모님께 야단맞거나 친구들과 싸우고 나면 혼자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산에 올라가기도 했지요.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작곡가 김민기가 만든 이 노래는 전인권의 앨범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전인권의 인생은 '봉우리'의 가사를 참 많이 닮았습니다. 그는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나 북악산 언저리에서 자랐지요. 어린 시절 해질녘이면 뒷산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는 저녁이면 늘 싸우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지만 산은 달랐습니다. 산에는 언제나 풀벌레 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가 있었습니다. 아랫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할 무렵 마을을 내려다보던 소년은 그때 자신의 귀가 열렸다고 고백합니다. 산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스테레오' 사운드에 귀를 연 것이 평생 음악가로 살게 된 자양분이 되어주었다고요. 저는 '유년의 뒷동산'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어린 시절, 고향 같은 뒷동산을 가진 사람은 그게 두고두고 큰 힘이 됩니다. 그 산이 어디에 있든, 높든 낮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양지바른 언덕을 가진 사람의 유년은 따뜻합니다. 요즘은 이런 뒷동산을 가진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무엇보다 산과 자연이 우리 아이들의 삶으로부터 너무 멀어져버렸습니다. 게다가 아이들끼리 산으로 간다 하면 부모들은 무서운 사건사고를 먼저 떠올릴 게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엄마 아빠가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가야 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아이에게 산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모험입니다. 물론 놀이공원에 가도 모험과 도전은 있습니다. 롤러코스터도 용기를 내야만 올라탈 수가 있지요. 하지만 놀이기구의 모험은 위험을 계산해 안전하게 만들어낸 가짜 모험입니다. 반면 산은 계산된 프로그램도, 예측 가능한 안전장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산을 두고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자연 속에 들어가면 어떤 것도 확정된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늘 시시각각 변하게 마련인 산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부자라 해도 아이의 인생 앞에 놓인 불확실한 미래를 완벽하게 준비해줄 수는 없습니다. 돈도 권력도 무한한 사랑도 아이의 인생을 대신해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아이와 함께 산에 갈 수는 있습니다. 산에서는 언제나 뜻밖의 일들이 생깁니다. 학교와 집, 학원 사이를 쳇바퀴 돌듯 반복적으로 오가는 도시 아이들에게 산에 간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모험입니다. 아무리 쉬운 등산로를 걷는다 해도 일상적인 생활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모험이 시작됩니다. 산을 오르는 일은 수학문제를 풀어내는 것처럼 정해진 공식대로 되지 않습니다. 산이야말로 울타리가 없는 넓고 높고 흥미진진한 모험 장소입니다.
산,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부모가 되면 아이한테 좋은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산이 좋다면 산에 데려가고 싶고, 바다가 좋다면 바다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아이들하고 산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안전을 살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산에서 부모는 잠자코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자연이란 큰 스승을 선입견 없이 만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산에 갈 때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는 부모들도 꽤 있습니다. 꽃 이름도 알아야겠고, 나무 이름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일단 산에 갔다면 보고, 즐기고, 좋아하고,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온몸으로 자연을 만나며 깨닫는 영혼의 교감이 훨씬 중요하니까요. 엄마도 아이와 함께 그곳에서의 순간을 똑같이 누리세요. 나무 이름이나 풀벌레에 대한 공부는 그다음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주기
원래는 운동도 잘 못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산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다녔을 뿐이었어요. 그러다 큰아이를 낳고 백일이 지나자 갑갑한 기분이 들더군요. 어느 정도 몸을 추슬렀다는 생각에 이제 다시 산에 가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당시 집에서 가장 가깝던 관악산 연주암까지 아이를 안고 올라갔어요. 그때 나무 그늘 속에서 땀에 젖은 상태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정말 그 순간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이후 아이가 자라는 동안 줄곧 산에 갔습니다. 아직 걷지 못하던 아기 때는 등산용 캐리어와 아기띠를 이용했고, 걸음마를 시작한 뒤로는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산을 즐겼어요. 이렇게 아이를 데리고 산에 다니면 부모는 자연스럽게 욕심을 절제하게 됩니다. '더 빨리', '더 높이' 가려는 엄두는 낼 수가 없지요. 그저 아이의 호흡에 맞출 뿐이에요. 그래서 아이와 숲에 갈 때면 종종 자벌레가 생각납니다. 자벌레는 다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자신의 온 몸을 지렛대처럼 움직여 천천히 이동하지요.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산에 갈 때면 온몸으로 천천히 기는 자벌레의 속도가 떠올라요. 그렇게 되면 부모는 답답해진다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게 되고, 아이 때문에 몸을 낮추게 되는데 그러면 또 보이는 풍경이 달라져요. 아이들은 부모가 보지 못하는 작은 것들을 잘 봐요. 결국 산에 가면 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입장이 되는 게 아니라, 같이 누리고 공유하며 배우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산행은 오히려 부모에게 더 좋은 공부가 되지요. 어쩌면 육아나 자녀교육으로 조급하고 불안해하는 부모에게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주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겁니다.
◇산이 아이를 자라게 합니다
골목과 운동장에서 또래와 뛰놀며 심신을 단련하고 놀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터득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속 가상공간에서 놀고 있습니다. 자연과 모험의 삶으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놓고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사준 어른들이 결국 ADHD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입니다. 컴퓨터와 달리 호주머니 속에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좌우 뇌의 균형이 깨지면서 특히 전두엽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 운동과 산책, 등산, 자전거 타기 같은 운동입니다. 특히 등산하고 난 다음이면 혈액 속에 베타엔도르핀의 양이 10~20%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베타엔도르핀은 통증을 완화하며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어주는 천연 마취제입니다. 뇌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도 키워주지요. 산을 오르며 즐거움을 맛본 아이들은 빠르게 산에 적응합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산을 오른다는 건 특별한 즐거움을 줍니다. 평탄한 아스팔트를 걷는 것과 산길을 걷는 건 많이 다릅니다. 대부분 산은 울퉁불퉁하고 넘어지기도 쉽고 굴곡이 있습니다. 그런 길을 걸을 때 아이들은 뒤뚱뒤뚱 걸으며 스스로 몸의 균형을 찾아갑니다. 산에서의 그런 경험이 걸음을 걷는 아이들에게 굉장히 많은 자극이 돼요. 게다가 두 발로 그냥 걸을 때와 달리 고도를 지닌 산을 오를 때면 아이는 온몸을 씁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의식이 깨어나는 효과가 있고 아이의 감각은 더욱 발달하게 되지요. 적극적인 걸음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자연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교감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오래 있으면 마음도 열리고, 눈도 열리고, 귀도 열리며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동네 산부터 찾아가세요
숲과 산은 조금 다릅니다. 크게 보면 산 안에 숲이 있는 셈이지요. 높은 산에 오르면 수목 한계선이란 게 있어 더 이상 풀도 나무도 볼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동네 뒷산의 숲은 쉽게, 부담 없이 아이 손잡고 오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짐을 꾸려 아이들 데리고 차 타고 장시간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보다 가까운 동네 뒷산에 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동네 가까운 산에 자주 다니다 보면 아이도 엄마도 자기네 집 가까이 있는 숲이 잘 보존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고요. '우리가 여기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잘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저절로 생깁니다.실제로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 산이 들어간 이름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평소 그 사실을 잊고 지내곤 하지만 서울만 하더라도 증산동, 노고산동, 성산동, 응봉동, 개화동, 연희동… 모두 산에서 따온 지명입니다. 학교 교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노랫말 속에 산이 등장합니다. 애국가에도 백두산과 남산이 등장하지요. 지금은 고층 빌딩이 잔뜩 들어선 용산도 산에서 지명을 따왔습니다. 서울의 산줄기들이 한강과 만나는 마지막 지점이 용산마루였어요. 그 용산마루에 정자도 있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지요. 이렇듯 조금만 신경을 쓰면 서울의 도시 아이들도 누릴 수 있는 게 바로 산이에요. 큰 산이 아니더라도 서울에는 정말 많은 산이 있습니다. 아파트촌이라 해도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동네 뒷산, 야트막한 구릉이라도 보입니다. 만일 사방이 고층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면 지도를 펼쳐보세요. 지도 위에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지역의 범위를 넓혀가다 보면 어디든 산이 보일 겁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을 찾아 첫발을 내디뎌보는 겁니다. 높이는 중요치 않아요. 그저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산에 가면 무엇이든 배우게 됩니다
산에 갈 때 반드시 등산화, 배낭을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가까운 산에라도 일단 가는 게 우선입니다. '나는 등산화가 없어, 배낭이 없어' 이런 말 하지 말고 그냥 아무렇게라도 가면 됩니다. 언젠가부터 동네 약수터만 가도 고가의 등산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등산용품을 본 외국인들은 전문가 수준의 '히말라야 장비'로 무장한 것 같다며 놀라곤 합니다. 하지만 동네 뒷산은 안 그래도 되잖아요. 일단 가보는 겁니다. 설령 운동화를 못 신고 가더라도 그것조차 배움이 됩니다. 산으로, 숲으로 간다 하면 분명 자기 고집을 부리는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치마를 입고 가겠다는 아이도 있을 테고 아끼는 슬리퍼를 신겠다는 아이도 있을 거예요. 그냥 그 상태로 가게 하세요. 그럼 아이는 '참 불편하네. 다음에는 운동화를 신어야겠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다 '차라리 신발을 벗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요. 폭신한 흙길에서 한번쯤 맨발로 걸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입니다. 이렇게 산으로, 숲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 안에서 얻게 되는 것들이 있지요. 아이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라면 1년만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동네 산으로 떠나보세요. 아니, 한 달에 단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1년만 계속해보는 겁니다. 자연의 너른 품 안에서 사시사철 계절을 느껴보는 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큰 공부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