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당일 첫 종주 산행 실패기
1. 기간 및 종주 코스
가. 기간: 2002.10.11-11.13
서울역 출발(진주행열차):23:50
구례구역 도착 : 05:05
구례구 출발 : 05:15
구례읍 터미널 도착 : 05:25
구례읍 터미널 출발 : 06:04(06:00출발차)
나. 종주 코스
성삼재 도착 및 출발 : 06:40
노고단 돌탑 도착 : 07:14
노고단 출발 : 07:18
임걸령 도착 : 07:57
임걸령 출발 : 08:05
삼도봉 도착 : 08:38
삼도봉 출발 : 08:50
뱀사골산장위 도착 : 09:02
뱀사골 산장위 출발 : 09:10
연하천 산장 도착 : 10:25
연하천 산장 출발 : 10:35
벽소령 산장 도착 : 11:42
벽소령 산장 출발 : 11:50
선비샘 도착 : 12:38
선비샘 출발 : 12:43
세석 산장 도착 : 14:08
세석 산장 출발 : 14:13
장터목 산장 도착 : 15:38
장터목 산장 출발 : 15:45
천왕봉 700m전방도착: 16:20
천왕봉 700m전방출발: 16:25
장터목 산장 도착 : 16:42
장터목 산장 출발 : 16:50
중산리 매표소입구도착:18:26
중산리 버스정류장 도착:18:54
중산리 출발(진주행) :19:35
진주버스터미널 도착 :20:40
진주역 도착 :20:50
진주역 출발(서울행열차):21:19
서울역 도착 :04:35
집도착: 06: 20
2. 경비 내역
가. 교통비
서울-구례구 기차요금 19,400
구례구-구례 버스비 700
구례버스터미널-성삼재 2,950
중산리-진주 버스비 3,800
진주택시비 2,500
진주-서울역 기차요금 24,900 소계: 54,250
나. 입장료: 2,600
다. 부식 및 간식: 햇반외 9,940
라. 식사비: 3500
계: 70,290원
3. 종주기
◦지리산 당일 종주는 처음이어 약간의 걱정이 된다. 20년 1박 2일 코스로 친구 부부와 첫 종주를 무사히 마쳐 조금 자신감도 생긴다 또 2년동안 등산을 꾸준히 하여 체력적인 보강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직장 대외 보고회 준비로 계속된 야근과 토요일 오후와 공휴일의 계속적인 근무로 심신이 피곤함
◦특히 수석 부장과 사장의 불화로 중간 역할자의 입장에서 너무 힘이 들어 직장의 일에 대해 잊고싶어 종주 산행함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훌훌 산으로 떠나고 싶었음
◦여름 휴가에 단념한 지리산 당일 종주 계획을 실행함
◦고단한 심신을 이끌고 진주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음. 젊은 등산객 10여명이 있음. 과연 당일 종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1박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으니 약간의 여유도 있다.
심신이 고단하였는지 잠이 잘 왔다. 중간에 몇 번 깨었지만,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80여명의 등산객들이 큰 배낭을 매고 내린다. 택시를 타고 일찍 가는 사람들도 보이나 나처럼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부부 등산객, 초등학생 아들과 산행하는 아버지 등 다양하다
구례버스터미널에서 30분정도 기다려 성삼재행 첫 버스(06:00)를 탔다. 천은사를 끼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버스에서 내려다 보는 운해는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성삼재에 내려 뒤도 보지 않고 돌진했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쳐지면서 무엇이 바빠 그렇게 서두르냐고 묻는다. 당일 완주할려는 마음도 모르고, 앞서가는 사람들을 재치고 계속 올랐다. 노고단 돌탑고개에서 보는 반야봉을 위시한 지리산의 육중한 모습은 아침 햇살을 맞아 티끌하나 없는 자연의 원상태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산을 주시고, 나를 주시고, 건강한 다리를 주셔서, 작년 종주때는 임걸령이 금방 나타난 것 같았는데 한참을 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작년 여름 임걸령샘물의 시원함을 잊지 못해 안달을 하고 가니 더욱 더딘 것 같다. 그런데 가을 샘물맛은 여니 샘물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실망이다. 계속 사람들을 재치고 반야봉을 지나쳐 삼도봉에 도착하여 집에서 만든 김밥 2덩이를 김치와 함께 먹었다. 밥맛이 없는지 입맛이 좋이 않은지 별로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뱀사골 산장 고개위다. 안내된 시간보다 1/2정도 단축된 것 같다. 좋다 당일 종주다. 1박을 생각하고 준비한 것들이 귀찮아 지고 부담이 된다. 진주행 막차 시간을 맞추려니 쉬는 시간이 아깝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안고 계속 가는데 아저씨 한분이 소변을 보고 10m 전방에 아주머니 한분이 길에 앉아있는 것 같더니 황급히 바지를 올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보면서 그대로 통과할 수 밖에 없었다. 길에서 조그만 들어가면 자연의 화장실이 널려 있는데도 말이야. 나를 앞질러 가는 등산객은 없다. 묵묵히 앞질러 갈 뿐이다. 그런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 가 힘차게 내 앞을 지나간다. 질 수 없다. 평지나 다름없는 길에서 추월했다. 오름길에서 추월당하고 힘이 들어 계속 쉬면서 갔다. 젊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은 멀리 갔겠지 했는데 연하천 산장에서 만났다. 그를 뒤로 하고 계속 걸었다. 내앞을 지나지는 않았다. 연하천 산장을 앞두고 산을 오르는데 다리가 아프다. 나무 계단을 내려서서 연하천 산장 샘물을 마시고 용변을 보려는데 화장실이 폐쇄다. 산장을 조금 지나 숲 속에서 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였다. 벽소령산장까지 지루하다. 배낭이 더욱 무거워진다. 벽소령산장이 바로 아래 보이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참고 갈 뿐이다. 작년 종주때 1박했던 산장이다. 바로 지나갔다. 선비샘에서 점심을 먹고 쉴 예정이다. 선비샘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억으로 벽소령산장에서 금방이었는데. 중간에 점심 생각이 없어 간식을 먹고 계속 나아갔다. 세석 산장을 향하여 산을 넘는데 올라갈 때 허벅지 근육이 당겨 통증이 심하다. 쉬면서 근육을 달래 겨우 세석 산장위에 도착했다. 세석 평전고개길을 계속 올라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역시나 20여미터를 못가서 근육에 통증이 온다. 아플 때마다 2분 쉬고 걷고 하여 겨우 촛대봉을 넘어 장터목 산장을 향하는데 장딴지 근육도 아프다. 휴식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탓이구나. 그러나 당일 종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참고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장터목 산장을 향해 마지막 산을 올라가는데 더 이상 갈 수 없다. 긴풀밭에 다리를 쭉 뻗고 누어서 휴식을 취했다. 마음은 조급하나 어쩔 수 없다. 10분이상 휴식을 취하고 나니 새 힘이 솟아나 산을 넘고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시간상으로 충분히 천왕봉에 올라 하산할 수 있구나. 작년처럼 배낭을 산장에 맡기고 물통을 들고 제석봉을 행해 올랐다. 허벅지 장딴지 발목 다 아프다. 정상이 저긴데 여기서 말 수 없다. 쉬고 쉬면서 올랐다. 제석봉의 고사목이 나를 반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오로지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옮겼다. 제석봉을 어렵게 지나 천왕봉을 향했다. 700여 미터를 앞두고 소변을 보았다. 양이 아주 작고 오줌보가 있는 하복부에 통증이 심하다. 이러다가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길 가 숲속에서 휴식을 취했으나 여전하다. 참고 정상을 향할까. 여기서 하산할까 중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 내려가자 구름이 넘나드는 천왕봉을 지척에 두고 하산했다. 패잔병같은 심정이다. 다음 기회를 보자.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위로를 하였지만 씁쓸하다. 버스시간안에 중산리에 도착할 수 있을련지 걱정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배낭을 찾아 내려가는데 다리에 통증이 심해 쉬면서 하산했다. 중산리 계곡길에 바위와 돌이 많고 길이 분명하지 않아 날이 어두워지면 힘들 것이다. 전지는 있지만. 이정표를 보면서 4킬로미터쯤 가니 하산하는 등산객 2사람이 보였다. 청년들이었지만 산행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았다. 뒤로 하고 날은 어두워 지고 있었다. 중산리 매표소를 1KM쯤 남기고 대가족 등산객이 하산하고 있었다. 약간 더듬거리며 하산하고 있었다. 매표소를 뒤로 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는데 아가씨 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다 전주에 사는데 피아골을 출발해서 벽소령에서 일박하고 로타리 산장쪽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버스정류장까지 같이 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막차가 7시 30분 출발이었다 술 한잔 생각이 났지만 참고 진주로 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갈 까 했으나 안전을 고려하여 기차로 가기로 하고 역전에서 택시를 내렸다 시간이 20분쯤 남아 근방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국물없이 아침,점심을 먹은 탓인지 너무 맛이 좋았다. 9시 19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몸이 파김치가 되어 그냥 쓸어졌다. 의미있는 산행이었다.